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초능력자'라는 제목만 보고 단순한 액션 오락 영화겠거니 했는데, 보고 나서 한참 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더군요. 저는 과거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을 상대하며 일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면이 유독 많았습니다. 눈으로 타인을 조종하는 초인과 죽어도 죽지 않는 균남. 단순한 능력 대결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가 진짜 하려는 이야기는 그 너머에 있습니다.
소수자 서사 — 초인은 왜 괴물이 되었나
이 영화를 두고 '권선징악 구도의 초능력 액션물'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읽었습니다. 초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처음부터 악인이었던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눈이 가려진 채로 자라야 했던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 그리고 어머니의 동반 자살 시도. "왜 부모마저 나를 죽이려 합니까"라는 그 대사는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자의 비명에 가깝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처럼 어린 시절 반복적으로 학대나 방치를 경험한 경우 애착 장애(Attachment Disorder)가 발생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여기서 애착 장애란, 주양육자와의 건강한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지 못해 이후 모든 대인관계에서 신뢰를 쌓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초인이 보여주는 냉혹한 도구적 인간관계, 즉 모든 사람을 수단으로만 보는 태도는 이 맥락에서 읽힐 여지가 충분합니다.
제가 현직 시절에도 비슷한 사례를 마주한 적이 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배척당한 사람은 결국 스스로를 '이해받을 수 없는 존재'로 규정해버리고, 그것이 반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초인이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날 괴물로 만든 그 능력뿐"이라고 내뱉는 순간, 저는 그 대사가 허구가 아니라 어떤 실제 인간의 고백처럼 들렸습니다.
영화는 이 초인의 서사를 통해 한국 사회의 배제와 낙인(stigma)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낙인이란 특정 속성 때문에 사회 집단에서 가치 절하되고 차별받는 현상을 뜻합니다. 다름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에서 소수자는 자신의 능력을 숨기거나, 반대로 그것을 무기화하는 방향으로 치닫게 됩니다. 초인의 선택은 후자였습니다.
초인 서사에서 주목할 만한 장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눈을 가린 채 성장한 유년기: 능력 자체가 억압과 공포의 대상이었음을 보여줌
- 아버지의 목을 꺾게 만드는 장면: 축적된 폭력에 대한 역반응으로 해석 가능
- 어머니의 동반 자살 시도: 가장 가까운 존재로부터도 존재를 부정당한 트라우마
- "남들과 다르다는 거 당신들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소수자 서사의 핵심을 압축한 대사
실제로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소수자 정체성으로 인한 만성적 사회 배제가 개인의 심리적 안녕감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합니다. 이 점은 소수자 관련 정신건강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국립정신건강센터).
권선징악 너머 — 균남의 '살리는 힘'이 진짜 초능력인 이유
균남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두 가지 시각이 공존합니다. 단순히 "죽지 않는 신체 능력 덕분에 이긴 것"이라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보다 그의 우직함과 선의의 구조가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균남은 특별한 배경도 없고 전략적으로 뛰어난 인물도 아닙니다. 폐차장 일꾼에서 전당포 직원으로 이직하고, 동생들과 장어를 먹을지 말지를 고민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평범함이, 초인의 심리 조종 능력인 마인드 컨트롤(Mind Control)을 무력화시킵니다. 여기서 마인드 컨트롤이란 타인의 시선이나 의지를 강제적으로 제어하는 초능력적 통제 행위를 가리키는데, 이 영화에서는 오직 균남과 아기에게만 통하지 않습니다.
이 설정이 저한테는 꽤 날카롭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현장에서 가장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이해관계 없이 움직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균남이 전당포 사장님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고 끝까지 초인을 쫓는 건 의무도 명령도 아닙니다. 그냥 그게 옳다고 생각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 단순함이 오히려 조종의 여지를 없앱니다.
레질리언스(Resilience) 개념도 여기서 겹쳐 보입니다. 레질리언스란 역경이나 충격에 노출된 후 원래 상태로 회복하거나 오히려 더 강하게 적응해나가는 심리적 탄성을 의미합니다. 균남은 초인에게 맞아 쓰러지고, 전기충격을 당하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도 매번 되살아납니다. 신체적 레질리언스가 심리적 레질리언스와 맞닿아 있다는 설정이 꽤 일관성 있게 작동합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끝까지 붙잡고 늘어져 사건을 해결했을 때의 그 벅찬 감각을 저도 한 번 경험해봤습니다. 균남의 마지막 장면,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역에 나타나 또 한 번 사람을 구하려 몸을 던지는 뒷모습이 그날의 감정과 겹쳐 보인 건 그래서였을 겁니다.
영화 '초능력자'는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지만 이후 흥행 확장에는 한계가 있었고, 이는 한국 관객에게 아직 낯선 SF 초능력 장르의 수용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장르 수용성과 관련된 한국 영화 산업 통계는 공식 기관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이 영화는 결국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능력이 강한 자가 살아남는 세계에서, 힘이 아닌 선의로 버티는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저는 그 질문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초능력 소재에 거리감을 느끼는 분들도 소수자 서사나 인물 심리 중심으로 접근하면 충분히 다르게 읽힐 수 있는 작품입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단순 오락물로 치부하지 말고 한 번은 처음부터 끝까지 초인의 시선으로 따라가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