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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청춘 (자아존중감, 정서적결핍, 공교육한계)

by PROpark777 2026. 5. 6.

열여덟 청춘 (자아존중감, 정서적결핍, 공교육한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요즘 나오는 학원물이겠거니" 했는데, 스크린에서 나온 건 제가 20년 전 교실에서 직접 겪었던 그 냄새 그대로였습니다. 입시 경쟁 바깥에서 조용히 무너지던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을 끝내 못 보는 척했던 어른들. 영화 18 청춘은 시골 여고에 부임한 담임 희주와, 세상에 마음을 닫아버린 학생 순정의 이야기를 통해 공교육의 정서적 기능 부재를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희주라는 캐릭터가 불편하게 느껴진 이유

희주 선생님은 처음부터 "또라이 냄새"를 풍깁니다. 첫날 반에 들어서자마자 "잔소리 없고 귀찮은 거 딱 질색이니까 알아서 해"라고 선언하고, 핸드폰도 안 걷고, 반장도 일주일씩 돌아가며 맡기자고 합니다. 처음 보면 무책임한 교사처럼 보이기 쉬운 구성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니 다르게 읽혔습니다. 저도 처음엔 "저게 무슨 선생님이야"라고 생각했을 법한 스타일인데, 사실 희주가 하는 것들은 학습자 자율성(Student Autonomy)을 극대화하는 교육 방법론과 맞닿아 있습니다. 여기서 학습자 자율성이란 학생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통해 책임감과 내적 동기를 형성하도록 돕는 교육 접근 방식입니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규율로 잡으려 했던 기존 교사들과 정반대의 방향입니다.

반장을 돌아가면서 맡기자는 제안도 같은 맥락입니다. 단순한 꼼수가 아니라, 리더십 경험을 특정 학생에게 독점시키지 않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그 의도가 처음엔 불편하게 느껴졌던 건, 아마 우리가 그 반대의 방식에 너무 오래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순정이라는 존재가 왜 그렇게 마음에 걸렸나

체육 시간, 대부분의 아이들이 픽픽 쓰러지는 가운데 순정만 혼자 살아납니다. 야자를 땡치고 잠만 자던 아이가, 운동장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빛나는 존재가 됩니다. 그런데 교실에서 그 아이의 존재감은 사실상 제로입니다. 같은 반 아이들조차 그 이름을 모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아이들은 학교에서 꽤 자주 있었습니다. 잘하는 게 분명히 있는데, 그게 성적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투명인간 취급받는 아이들. 저 또한 학창 시절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늘 위축되어 있었고, 학교라는 공간이 즐거움보다는 버텨내야 하는 의무처럼 느껴졌습니다. 순정이 야자 시간을 빠져나와 집에 돌아가는 장면이 유독 오래 기억에 남았던 이유입니다.

순정의 가정환경은 정서적 방임(Emotional Neglect)의 전형적인 구조입니다. 정서적 방임이란 부모가 물리적으로는 곁에 있지만, 자녀의 감정과 심리적 필요를 지속적으로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매일 술과 남자에 의존하는 엄마, 쌓여가는 고지서, 그리고 그 안에서 혼자 세상과 싸워온 순정. 아이가 옥상에서 돌을 집어 드는 장면은 분노나 비행의 표출이라기보다, 오랫동안 눌려온 감정이 터지는 출구로 읽혔습니다.

실제로 청소년 정신건강 관련 조사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확인됩니다. 가정 내 정서적 지지가 부족한 청소년일수록 학교 적응력이 낮고, 사회적 철수(Social Withdrawal) 행동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여기서 사회적 철수란 또래 관계나 사회적 활동에서 스스로 멀어지는 심리적 반응을 의미합니다.

카드 테스트 한 장면이 던진 질문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희주가 진행한 가치 카드 테스트입니다. 가족, 친구, 멘토, 그리고 나 자신을 각각 카드에 쓰고 하나씩 버려나가는 구조입니다. 이 기법은 교육 상담 현장에서 활용되는 가치 명료화 기법(Values Clarification Technique)과 유사합니다. 가치 명료화 기법이란 개인이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탐색하고 우선순위를 정리하도록 돕는 심리 교육적 접근법입니다.

희주는 마지막 카드로 "나 자신"을 남겼습니다. 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런데 순정은 끝까지 엄마와 할머니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선택하는 아이. 보기에 따라 효심이 깊어 보일 수 있지만, 저는 그 장면에서 마음이 많이 무거워졌습니다.

제가 학창 시절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때, 은사님께서 조용히 부르시더니 "네가 행복해야 세상도 의미가 있는 거란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한마디 전까지, 저도 순정처럼 나 자신을 맨 먼저 포기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 말씀이 없었다면 저도 오랫동안 제 자신을 제일 나중 순위에 두고 살았을 겁니다.

영화가 비판하는 지점은 바로 이겁니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너무 이른 나이에 희생과 인내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자아존중감(Self-Esteem), 즉 자기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심리적 토대가 형성되기도 전에, 아이들은 이미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를 지우는 방법부터 배워버립니다.

학교가 울타리가 아니라 감시소가 된 순간

교무실 창문이 깨지자마자 벌어지는 학교 측의 반응은 이 영화에서 가장 날카로운 장면입니다. 사건의 원인을 파악하기도 전에 "문제아"들을 잡아들여 징계 위원회에 회부하겠다는 학생 부장의 발언, 그리고 "부임한 지 얼마 안 돼서 뭘 잘 모르나 본데"라며 희주를 무시하는 교감의 태도. 이 두 장면만으로 이 학교가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지 단번에 설명됩니다.

희주가 "왜 학생이 그랬다고 단정 짓느냐"고 반문하는 장면은 단순한 충돌이 아닙니다. 교육 현장에서의 귀인 오류(Attribution Error)를 정면으로 건드리는 대사입니다. 귀인 오류란 어떤 사건의 원인을 분석하지 않고 특정 대상에게 책임을 성급하게 귀속시키는 인지적 오류를 말합니다. 증거도 없이 학생을 가해자로 단정 짓는 행동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구조는 우리 공교육 현장에서 낯설지 않습니다. 실제로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폭력 및 학생 생활지도 실태 자료에서도, 문제 행동의 배경보다 처벌 절차에 집중하는 경향이 여전히 상당수 학교에서 나타난다는 점이 지적된 바 있습니다(출처: 교육부). 희주처럼 "왜 그랬는지부터 알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교사가 현실에서 얼마나 적은지, 그게 이 영화를 불편하게 만드는 진짜 이유입니다.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교육의 본질은 지식 전달이 아닌 자아존중감의 형성에 있다
  • 문제 행동의 뒤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은 대부분 가정과 관계에서 비롯된다
  • 진심 어린 시선 하나가 통제와 규율보다 훨씬 강한 교육적 효과를 낼 수 있다
  • 아이들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려면, 먼저 그것을 기다려주는 어른이 필요하다

영화 18 청춘을 보고 나서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화려한 연출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교실 안에 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정이 옥상에서 돌을 던질 때의 그 마음, 그리고 희주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끝끝내 아이들을 놓지 않는 그 방식. 공교육에 지쳐 있거나, 학창 시절의 어떤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분이라면 이 영화가 꽤 오래 마음에 남을 겁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본다면 서로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꺼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aeYSc3Zu4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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