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처음에 이 드라마를 그냥 막장 권력 드라마쯤으로 봤습니다. 공직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어지간한 '권력자 악당' 클리셰에는 좀 무뎌진 편이거든요. 그런데 북천시를 장악한 장씨 가문의 이야기를 보는 내내, 제가 현직 시절 목격했던 지역 인맥 구조와 너무 닮아 있어서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드라마 속 장범호라는 인물이 왜 무서운지, 그리고 그 이후를 이어받는 장기서가 왜 더 위험한지를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지역 권력 유착의 민낯, 얼마나 현실적인가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의문은 이겁니다. 한 도시를 이 정도로 장악하는 게 과연 가능한가?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가능합니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
드라마 속 북천시에서는 권력 유착(Power Collusion)이 핵심 구조로 작동합니다. 여기서 권력 유착이란 정치권력, 사법권력, 경제권력이 하나의 사적 네트워크로 묶여 서로를 보호하는 구조를 말합니다. 장범호가 시장을 세 번 역임하는 동안 검찰, 경찰, 언론, 지역 기업이 그의 산하로 편입된 방식이 바로 이것입니다. 저도 공직 초기에는 이런 구조가 외부에서 보면 잘 안 보인다는 걸 몰랐습니다. 안에 있어도 잘 안 보이더라고요.
특히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대성리조트 회장 윤동식의 장남이 저지른 성폭행 사건을 검찰 라인을 통해 무마하려 했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이때 작동하는 게 바로 후원-보호 구조인데, 후원-보호 구조란 경제적 실력자가 정치권력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그 대가로 사법적 보호막을 제공받는 상호의존 관계를 뜻합니다. 구용찬 전 대통령의 뒤에 윤동식이 있고, 윤동식의 뒤에는 다시 장씨 가문이 있는 이 삼중 구조는, 실제로 여러 지방 권력 비리 사건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패턴입니다(출처: 국민권익위원회).
드라마 속 장기서가 북천시청 직원들의 인적 사항을 줄줄이 꿰고 있는 장면도 인상 깊었습니다. 총무부 과장 아버지는 북천해양 선장, 행정과장 처가는 납품 업체, 홍보국장 형은 학교 교감. 이 정도면 공무원 조직 전체가 사실상 사기업의 하청 구조로 편입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제가 공직 시절 옆에서 목격한 것도 이런 식이었습니다. 노골적인 명령이 아니라,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쌓여가는 부채 관계였습니다.
법치주의 실종이 만드는 진짜 공포
드라마가 단순한 오락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저는 그게 법치주의(Rule of Law)가 무너지는 과정을 너무 정확하게 묘사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법치주의란 어떤 개인이나 집단도 법 위에 설 수 없으며, 공권력 역시 법에 따라 행사되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그런데 북천시에서 경찰이 영장도 없이 움직이거나, 반대로 영장을 청구하는 순간 작전이 노출된다는 설정은 이 원칙이 이미 형해화(形骸化)된 도시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형해화란 제도나 원칙이 겉모습은 유지되지만 실질적 기능을 상실한 상태를 말합니다.
실제로 법치주의 지수와 관련된 조사를 보면, 지역 단위 공공기관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중앙 정부 대비 취약하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지적됩니다(출처: 한국투명성기구). 드라마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방증입니다.
드라마에서 제가 특히 오래 생각하게 된 장면은 준서의 아내 조민주가 죽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녀가 왜 가짜 이름으로 살았는지, 그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은 단순한 미스터리 전개가 아닙니다. 북천이라는 폐쇄 권력 구조 안에서 진실을 알게 된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자신을 지우는 것'이었다는 점이, 저는 굉장히 섬뜩했습니다. 제 경험상, 권력에 눌린 현장에서 내부 고발자가 겪는 현실과 놀랍도록 겹쳐 보였습니다.
장기서가 직접 말한 "약한 놈이 개기면 강한 놈이 밟아준다"는 대사는 갑질 문화의 본질을 상당히 날카롭게 꿰뚫습니다. 갑질 문화란 구조적 우위에 있는 집단이 그 지위를 이용해 하위 집단에게 부당한 압력이나 피해를 가하는 관행을 뜻합니다. 이 문화가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임을 드라마는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북천시에서 드라마가 비판하는 갑질 문화의 세 가지 핵심 고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 인맥을 통한 공직 사유화: 시청 직원부터 검찰, 경찰까지 사적 연줄로 편입
- 사법권의 사인화: 수사와 기소가 권력자의 의지에 따라 선택적으로 작동
- 침묵 강제: 진실을 아는 시민이 자수를 택하거나 죽음으로 내몰리는 구조
권력의 덧없음과 진짜 정의의 조건
그렇다면 이 드라마가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나쁜 권력자가 응징당한다는 이야기일까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장기서가 "내 그릇은 아버지가 만들어 준 그릇이 아니라, 제가 깨부수고 새로 만든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표면적으로는 독립 선언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가 정작 사용하는 방법은 아버지와 다를 게 없습니다. 인맥을 동원하고, 언론을 통제하고, 경쟁자를 제거하는 방식 말이죠. 새 그릇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여전히 같았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 드라마를 보며 가장 깊이 남은 질문입니다. 성벽을 무너뜨린다고 해서 그 자리에 자동으로 신뢰가 세워지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요. 준서가 형 기서의 세계로 들어가 '개가 되어 주인을 무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도, 결국 같은 논리 안에서의 싸움입니다.
공직 생활을 오래 하면서 제가 배운 한 가지는, 제도는 사람이 만들지만 그 제도를 지키는 것도 결국 사람이라는 겁니다. 드라마 언터처블은 그 사람이 흔들릴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북천이라는 공간에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권력의 덧없음을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그 권력을 견제할 개인의 선택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묻고 있습니다. 드라마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